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1960~70년대.<br /><br />링 위에서 벼락같은 박치기로 상대 선수를 쓰러뜨리며 국민에게 희열을 줬던 흑백 TV 속 영웅, 고 김일 선수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br /><br />한국 프로레슬러 1세대로 꼽히는 김일 선수는 1929년, 전라남도 고흥의 섬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br /><br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으로 소년 시절부터 씨름대회를 휩쓸었는데요.<br /><br />당시 세계챔피언으로 명성을 떨치던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기사를 읽고,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한 일본행을 결심합니다.<br /><br />27살이던 1956년, 일본으로 밀항했지만 적발돼 1년간 복역하게 됩니다.<br /><br />교도소에서 그는 끊임없이 역도산에게 편지를 썼고, 그 열정에 탄복한 역도산의 보증으로 풀려나 도쿄의 역도산 체육관에 1기 문하생으로 들어갑니다.<br /><br />고된 훈련을 거친 김일 선수는 1958년, 오오키 긴타로라는 이름으로 데뷔합니다.<br /><br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사나이'라는 뜻으로 스승 역도산이 지어준 이름인데요.<br /><br />1963년, 생애 최초로 세계 레슬링협회(WWA)의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고, 약 3천 번의 국내외 경기를 치르는 동안 20여 차례 세계 타이틀을 따냈습니다.<br /><br />김일 선수의 호쾌한 경기는 당시 많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안겼습니다.<br /><br />사마귀처럼 머리를 뒤로 젖혔다 돌진하는 박치기로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등 내로라하는 세계 거인들을 쓰러뜨리면 전국은 환호성으로 들썩였습니다.<br /><br />특히 호랑이가 그려진 가운을 입은 김일 선수가 일본 선수를 때려눕히는 광경은 민족적 울분을 씻어주기도 했습니다.<br /><br />1980년 은퇴 후 후배 양성에 매진하던 김일 선수는 레슬링 후유증으로 생긴 뇌혈관 질환 등을 앓으며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웠고, 2006년 10월 26일 타계했습니다.<br /><br />후배들은 한국에 프로레슬링을 꽃피웠던 김일 선수를 잊지 않기 위해 그의 고향인 거금도에서 추모 레슬링대회를 마련했습니다.<br /><br />거금도는 김일 선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을 때 고향에 전기가 들어가도록 부탁했다는 일화가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br /><br />가슴 따뜻한 박치기왕을 기리는 뜻깊은 무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br /><br />▶ 기사 원문 : http://www.ytn.co.kr/_ln/0103_201610251401344775<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8585@ytn.co.kr, #2424<br /><br />▣ YTN 유튜브 채널 구독 : http://goo.gl/Ytb5SZ<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