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별세한 구봉서 씨는 1960~1980년대를 풍미한 1세대 코미디언입니다.<br /><br />당시 인기는 엄청났지만, 따뜻한 마음과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늘 간직했던 우리 코미디계의 진정한 큰 어른이었습니다.<br /><br />구봉서 씨가 남긴 말들을 통해 지난 삶을 되돌아 보겠습니다.<br /><br />40∼50년 전 우리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었고 연예인에 대한 인식도 좋지 못했습니다.<br /><br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구봉서 씨는 대중적인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br /><br />구봉서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br /><br />"공연에 사람들이 너무 몰려 유리창이 깨지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고 공연을 보러 왔었다"<br /><br />구봉서 씨는 5분짜리 짧은 라디오 프로도 했는데 거기서 이런 유행어를 낳았습니다.<br /><br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br /><br />생각을 전할 수단이라야 편지나 엽서가 전부였던 시절, 위트 있는 팬 레터도 받곤 했으니 그의 말 한마디,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게 됩니다.<br /><br />본업인 코미디 프로그램을 할 땐 에피소드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br /><br />특히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코너를 할 때는 70자가 넘는 이름을 죽 읊어야 했는데 배삼룡, 양석천 씨는 억지로라도 웃음을 잘 참았지만, 서영춘 씨는 온갖 인상을 써 끝내 웃음이 터졌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br /><br />이렇게 남을 웃기는 자신의 직업, 코미디언을 구봉서 씨는 천직으로 여기며 평생을 살았습니다.<br /><br />특히 배고프고 힘든 시절, 국민에게 웃음을 줘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코미디는 운명이라고 말했습니다.<br /><br />큰 인기도 얻었고 코미디계의 대부로까지 불렸지만 구봉서 씨의 바람은 소박했습니다.<br /><br />원망이나 후회도 없이 여느 노인들처럼 사람들이 그저 한 번쯤 자신을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맙겠다는 것뿐이었습니다.<br /><br />6년 전 평생의 콤비였던 배삼룡 씨가 먼저 세상을 떴을 때 구봉서 씨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고 하죠.<br /><br />그리고 그 말대로 배삼룡 씨가 떠나고 6년이 지난 어제 친구의 곁으로 떠났습니다.<br /><br />따뜻한 마음과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사람들에게 웃음뿐 아니라 큰 울림을 줬던 구봉서 씨.<br /><br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br /><br />▶ 기사 원문 : http://www.ytn.co.kr/_ln/0106_201608280009591502<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8585@ytn.co.kr, #2424<br /><br />▣ YTN 유튜브 채널 구독 : http://goo.gl/Ytb5SZ<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