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br /><br />100년 전 3·1 운동의 기록을 집대성한 데이터 베이스가 공개됐습니다. <br><br>권솔 기자가 1919년 만세 운동의 궤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br><br>[리포트]<br>"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떳떳하게 외쳐라. 대한 독립 만세." <br> <br>국사편찬위원회가 3년간의 연구 끝에 3·1 운동 자료를 집대성한 데이터베이스를 오늘 학술회의에서 공개했습니다. <br> <br>임시정부 문헌과 사료, 일제 판결문과 조서 등을 통해 공식 확인된 3·1 운동 참여자만 100만 명에 이릅니다. <br> <br>전국에서 천 7백여 건의 만세 운동이 벌어졌는데, 당시 행정구역 기준으로 국토의 96%에서 한국인의 3분의 1이 만세 운동을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br> <br>[조광 / 국사편찬위원장] <br>"민족이 일체감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운동은 새로운 한 민족의 출발점이 되었다." <br> <br>3·1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윤봉춘 감독이 1959년 만든 영화 '유관순'은 이런 상황을 생생히 담고 있습니다. <br> <br>[영화 '유관순'] <br>"천안서 진천까지. 조치원서 청주까지. 이 안에 있는 40여 부락을 (만세 운동에) 동원 시켜야 해.” <br> <br>데이터베이스 분석 결과 만세 운동이 끝난 날 역시 기존에 알려진 1919년 4월 16일이 아니라 4월 29일로 밝혀졌습니다. <br> <br>나라의 독립을 외치며 단결했던 민족의 외침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br> <br>[영화 '유관순'] <br>"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br> <br>채널A 뉴스 권솔입니다. <br> <br>kwonsol@donga.com <br>영상취재 : 김명철 <br>영상편집 : 이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