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br /><br />이틀 뒤 4월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을 맞는 날입니다. <br> <br>당시 초대 외교수장을 지낸 김규식 박사는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독립 외교를 펼쳤습니다. <br> <br>그의 발자취를 동정민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br><br>[리포트]<br>1차 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열강들이 모였던 파리 강화회의. <br> <br>임시정부 대표로 파견된 김규식 박사는 승전국이었던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 문턱도 넘지 못했습니다. <br> <br>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br> <br>[이장규 / 재불독립운동사학자 ] <br>"이 곳이 바로 임시정부 파리위원회가 있었던 장소인데요. (김규식 박사가 온 이유는) 한국의 아픈 상황을 선전하고 홍보해서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한 거였죠." <br> <br>일제의 지배를 옹호하는 프랑스 관료의 신문 기고를 반박하는 친필 서한을 냈고 외신 기자들에게 피끓는 연설도 했습니다. <br><br>"2천만 영혼의 간청에도 성의 있게 답하지 않는, 정의와 사상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프랑스에 경악한다" <br><br>그의 호소는 프랑스 언론에 전해지며 큰 화제가 됐습니다. <br> <br>프랑스는 일본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 설치를 허락했습니다. <br><br>[김명섭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r>"당시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제는 프랑스 국가 이익을 뛰어넘는 프랑스 국가 정체성의 문제였습니다." <br> <br>[동정민 특파원] <br>이제는 어렴풋한 흔적만 남아있지만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애끓는 호소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강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br> <br>파리에서 채널A뉴스 동정민입니다. <br> <br>영상취재 추진엽 최성림(VJ) <br>영상편집 변은민 <br>그래픽 박정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