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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수립 100년...아직도 못이룬 통합과 평화 / YTN

2019-04-09 20 Dailymotion

내일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br /> <br />나라는 해방이 됐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추구했던 통합과 평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br /> <br />중국 충칭에서 강성웅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br /> <br />[기자] <br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br /> <br />당시 서울과 연해주에도 임시정부가 있었지만 5개월 뒤 모두 상하이 임시정부로 합쳐졌습니다. <br /> <br />[이준식 / 독립기념관장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던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과 통합을 추진했고, 그리고 통합이 실현에 옮겨져서 1919년 9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 임시정부로 재출범을 하게 되는 거죠.] <br /> <br />임시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일제의 악랄한 탄압과 내부 분열로 암흑의 터널을 지나야 했습니다. <br /> <br />하지만 윤봉길 의사의 쾌거로 활력을 되찾았고, 목숨을 건 신념으로 버텨냈습니다. <br /> <br />[이소심 / 광복군 이달 선생의 딸 : 한국의 번영과 부강은 혁명 선조들의 선혈과 생명으로 바꾼 것입니다.] <br /> <br />1940년, 중국 내륙 충칭에 정착한 임시정부는 한번 더 통합의 용광로가 됐습니다. <br /> <br />좌우 이념과 분열을 뛰어 넘어 광복군을 창설한 것입니다. <br /> <br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이끌며 무장투쟁을 했던 김원봉 선생도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합류했습니다. <br /> <br />숫자는 천 명도 안 됐지만 통합으로 뭉친 기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br /> <br />임시정부는 일제에 선전포고를 했고, 광복군은 국내 진공 준비까지 마쳤습니다. <br /> <br />1945년 8월, 일제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해방을 맞았고,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br /> <br />[김 구 (1946.8.15 광복 1주년 기념 연설) : 어떠한 민족이 우리의 앞길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조상 나라를 위해서 조금도 아끼지 말고 우리의 몸에 있는 피 근량대로 전부를 다 쏟아 바쳐야 합니다.] <br /> <br />김구 선생은 평양까지 들어가 남과 북의 단독정부 수립을 막았습니다. <br /> <br />하지만 끝내 민족의 통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br /> <br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br /> <br />우리는 해방이 됐지만 아직 불안정한 남북분단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br /> <br />임시정부 독립지사들이 갈망했던 통합과 평화는 우리 세대가 풀어내야 할 과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br /> <br />충칭에서 YTN 강성웅입니다.<br /><b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4_201904100535458525<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8585@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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