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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풍찬노숙’ 4000km

2019-04-10 1 Dailymotion

<p></p><br /><br />내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지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br> <br>처음 자리잡은 상하이부터 광복을 맞은 충칭까지 27년의 역사가 중국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br> <br>권오혁 베이징 특파원이 발자취를 따라가봤습니다. <br><br>[리포트]<br>외국인이 치외법권을 누리는 곳으로 일본의 힘이 크게 미치지 않았던 상하이 황푸구 루이진얼로. <br><br>100년 전 이 곳의 한 셋방에서 독립지사들이 의회 격인 임시의정원을 열고, 인근에 임시정부 청사도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br> <br>온전히 남아있는 임시정부 청사는 1926년부터 윤봉길의 폭탄 의거 직후인 1932년 4월까지 사용한 '마당로 청사'입니다. <br> <br>[나중화 / 나창헌 선생 아들·광복회 부회장] <br>"1926년에 저희 아버지가 일본 영사관에 네 번의 폭탄을 터뜨려서 터졌어요. 백범 선생이 빨리 도망을 가라고 해서 항저우로 가서… " <br><br>이후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임시 정부를 이끌었던 김구 선생은 인근 자싱으로 피신했습니다. <br><br>중국 국민당 간부 추푸청의 도움으로 숨어 지냈습니다. <br><br>"2층에 위치한 침실을 사용한 김구 선생은 침대 옆에 비상 탈출구를 마련해 (화면 전환)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배를 타고 호수로 피신했습니다. " <br> <br>[추정위안 / 추푸청 선생 손자] <br>"(윤봉길의 의거로) 중국인들의 항일 투쟁도 크게 고무됐습니다. 그래서 제 조부도 마땅히 김구 선생의 도피를 도왔습니다." <br><br>임시정부는 이동 거리만 4천km에 달하는 떠돌이 생활 끝에 1940년 충칭에 안착했습니다. <br><br>"마지막으로 임시정부가 자리잡은 곳이 이 곳 충칭의 연화지 청사입니다. 바로 이 계단에서 귀국을 앞둔 임시정부 요인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 <br> <br>이국 땅에서 27년 간 꿋꿋이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임시정부는 광복의 순간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br> <br>채널A 뉴스 권오혁입니다. <br> <br>영상취재: 위보여우(VJ) <br>영상편집: 배영주 <br>그래픽: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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