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독립유공자들. <br /> <br />해방 이후 이분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후손들이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현실을 해결하지 못한 것도 우리의 민낯입니다. <br /> <br />가난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독립 유공자 후손들의 열악한 삶, 광복절을 앞두고 김대겸 기자가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br /> <br />[기자] <br />한적한 시골 마을의 허름한 주택. <br /> <br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 명패가 대문 옆에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br /> <br />여기저기 쳐진 거미줄. <br /> <br />좁디좁은 방에 낡은 세간살이. <br /> <br />독립 유공자의 후손, 89살 정화영 씨의 집입니다. <br /> <br />[정화영 / 故 정성모 독립유공자 후손 : 우리나라를 되찾아야겠다. 만세 부르자. 이렇게 이런 마음으로 개인별로 의사에 따라 나간 거지…] <br /> <br />할아버지인 정성모 애국지사는 1919년 만세 운동에 나섰다 일제의 혹독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br /> <br />이후 가정 형편은 급격히 어려워졌고, 가난은 3대에 걸쳐 대물림됐습니다. <br /> <br />방법도 모르고, 찾아온 공무원도 없어 지난 2005년에서야 유공자 가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br /> <br />[정화영 / 故 정성모 독립유공자 후손 : 내가 3·1 운동 독립운동이라고 하면 욕 밖에 안 나온다…왜 뭐 해오라 해서 신청하면 안 된다. 또 신청하라고 해서 가면 안 된다 (하니깐)] <br /> <br />75살 김종화 씨의 외할아버지는 만세 운동으로 옥살이를 했던 윤순태 애국지사입니다. <br /> <br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고, 외손주인 김 씨도 혹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습니다. <br /> <br />그나마 지난 4월, 독립 유공자 후손들을 위한 집짓기에 나선 비영리단체 덕분에 몸 편히 누울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br /> <br />[김종화 / 故 윤순태 독립유공자 후손 : 잘 못 사는 거를 알아서 어려운 사람 신청하라고 해서 70이 넘어서 아무 일도 못 하고 하니깐 신청을 해서 혜택을 (받게 된 거죠.)] <br /> <br />독립 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지원이 시작된 건 해방 뒤 17년이 지난 1962년. <br /> <br />이후 30년이 지나도록 국가가 인정한 독립 유공자는 770명에 불과합니다. <br /> <br />나머지 후손들은 국가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br /> <br />광복 50주년인 1995년에서야 정부의 뒤늦은 노력이 시작됐지만, 이미 3대가 지난 시점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는 없었습니다. <br /> <br />[김주용 /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 인문사회연구소 교수 : 정식 정부가 1948년에 성립되고 나서 그 뒤 한참 있다가 독립 유공자를 추서하게 ... (중략)<br /><b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3_201908120529214183<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8585@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