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 안 된 1,500년 전 비화가야 고분 발견 <br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 63호분 <br />일제, 임나일본부설 증거 찾기 위해 집중 도굴 <br />바로 위 큰 무덤의 봉토가 흘러내려 도굴 막아줘<br /><br /> <br />일제가 1910년대 가야 고분을 집중적으로 도굴해 싹쓸이하듯 문화재를 털어간 곳, 바로 경남 창녕입니다. <br /> <br />이 창녕에서, 도굴을 피한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이 처음으로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br /> <br />이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br /> <br />[기자] <br />크레인이 봉토를 걷어낸 5세기 비화가야 고분에서 뚜껑돌을 들어냅니다. <br /> <br />마침내 돌을 쌓아 만든 석실이 천5백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br /> <br />석실 안에는 거뭇한 색깔의 가야 토기가 수북하게 쌓여있습니다. <br /> <br />토기 사이에 삐죽한 철기는 마구 중 발걸이 부분과 살포라는 농기구입니다. <br /> <br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유물입니다. <br /> <br />들어내지 않은 뚜껑돌 아래 빈 공간은 순장 공간입니다. <br /> <br />토기 아래 목관 부분과 순장 공간에 인골이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br /> <br />[양숙자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 : 도굴되지 않은 무덤이 발굴된 것은 이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의 250여 기 중에 처음이에요. 피장자를 매장할 때 어떤 방식으로 묻었고 어떤 의례를 했으며 그것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매장을 했는지에 대한 매장에 관련된 모든 과정을 복원할 수 있는 자료를 획득한 겁니다.] <br /> <br />가야 지배층 고분을 통틀어서도 온전한 무덤이 발굴된 건 1980년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4기가 발견된 뒤로 39년 만입니다. <br /> <br />일제가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를 찾기 위해 가야 고분, 특히 창녕 일대 고분을 집중적으로 도굴한 데다 가야 고분은 흙을 쌓아 만들어 도굴이 쉬웠기 때문입니다. <br /> <br />63호분이 도굴되지 않은 것은 바로 위 큰 무덤의 흙이 흘러내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br /> <br />비화가야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못했지만 삼국유사에 이름이 등장하는 엄연한 고대 국가였습니다. <br /> <br />[박종익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소장 : 비화가야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내륙 쪽으로 움직이는 교통로 상에 있는 가야국의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국의 관계나 교류에 있어서 굉장히 활발했던 가야라고 볼 수 있습니다.] <br /> <br />이번 발굴을 계기로 신라에 흡수된 비화가야, 나아가 6백 년에 이르는 가야사 연구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됩니다. <br /> <br />YTN 이승은입니다.<br /><b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6_201911282235024086<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social@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