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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을 기다렸지만" 치유되지 않은 오월의 아픔

2020-05-13 0 Dailymotion

"40년을 기다렸지만" 치유되지 않은 오월의 아픔<br /><br />[앵커]<br /><br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br /><br />긴 세월이 흘렀지만 5·18 가족의 아픔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br /><br />아직도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헤매고, 억울하게 죽은 자식의 한을 풀기 위해 5월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br /><br />김경인 기자입니다.<br /><br />[기자]<br /><br />이곳은 국립 518 민주묘지입니다.<br /><br />그중에서도 제가 서 있는 이곳은 80년 5월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는 묘역인데요.<br /><br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유해를 찾지 못해 이렇게 묘비만 쓸쓸히 놓여 있습니다.<br /><br />5·18 당시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사람은 242명, 그중 정부가 공식 인정한 행방불명자는 84명입니다.<br /><br />올해 81살이 된 차초강 씨의 큰 아들 이재몽씨도 84명 중 한 명입니다.<br /><br />재몽씨는 스무살이던 80년 5월 할머니와 함께 담양 집을 나섰습니다.<br /><br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br /><br /> "시퍼런 차가 우리 재몽이를 싣고 가버리더라. 할머니는 똑똑히 보셨는데… 그랬더니 영영 이렇게 안돌아오고 말았어요."<br /><br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나온 유골들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br /><br />노모의 가슴에 평생 응어리로 남은 큰 아들.<br /><br /> "유골도 못 찾고. 그냥 이렇게 있다가 가려니까 서운하고. 부모가 돼서 자식 유골도 못 찾아주고 갈까 싶어."<br /><br />82살의 이근례 씨는 DNA 검사를 통해 큰아들의 유골을 찾았습니다.<br /><br />5·18이 일어난 지 22년 만이었습니다.<br /><br /> "유골 나왔다고 하면 촌구석이고, 제주도, 무주 구천동까지 다 다녔어요. 안 다녀본 곳이 없어요."<br /><br />큰아들은 이씨에게 여전히 아픔이자,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br /><br />아들이 눈을 감은 옛 전남도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br /><br /> "이렇게 잠잠했다가도 새끼(죽은 아들)의 말만 들으면 머리가 솟구쳐요. (가슴이) 벌떡이고."<br /><br />4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아픔.<br /><br />5월 가족의 5·18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br /><br />연합뉴스TV 김경인입니다. kikim@yna.co.kr<br /><br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br /><br />(끝)<b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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