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을 소요사태로…당시 정부가 기록한 5·18은<br /><br />[앵커]<br /><br />올해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40년 되는 해입니다.<br /><br />지금은 민주화 운동으로 불리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죠.<br /><br />당시 정부가 5·18을 기록한 각종 자료에는 5·18을 어떻게 규정하고 광주시민을 탄압하려 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br /><br />김민혜 기자의 보도입니다.<br /><br />[기자]<br /><br />1980년 5월 17일 밤.<br /><br />비상계엄 확대소식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광주시민들.<br /><br />계엄군과의 삼엄한 대치 속에 도시 곳곳은 공포로 얼룩졌고 안타까운 희생은 늘어만 갔습니다.<br /><br />광주시민을 '무자비한 폭도'로 규정한 정부군의 당시 상황일지는 시민의 눈과는 너무 달랐습니다.<br /><br />같은 날 11시. 당시 정부는 금남로에 모여있던 학생들이 모두 해산했다고 썼지만, 광주시 동구청은 군용차량이 반죽음이 된 학생과 시민을 싣고 갔다고 적었습니다.<br /><br />또 다른 날 오전 8시. 정부는 폭도들이 시민을 선동했다고 기록했지만 광주시 동구청은 시민들이 데모대에게 빵과 음료수를 줬다고 썼습니다.<br /><br />그해 5월, 10일간의 기록 속에 광주시민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습니다.<br /><br /> "국방부 일지를 통해 봤을 때는 이분들은 폭도였고 폭도로 표현된 시민들을 보면 실제로 이분들은 서로 음료수도 나눠 먹고 같이 민주주의를 외쳤던…"<br /><br />정부가 5·18을 왜곡하려 한 시도는 다른 기록에서도 드러납니다.<br /><br />1980년 7월, 당시 상황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립영화제작소가 만든 7분짜리 영화에서 광주시민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무리들로 묘사돼 있습니다.<br /><br /> "학생들이 경찰 바리케이드를 칼과 봉 등으로 부수었고, 차량과 공공건물을 불태우면서 광주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br /><br />'광주사태'에서 '5·18민주화운동'으로 세월이 흘러 명칭은 바뀌었지만, 이 비극의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br /><br />연합뉴스TV 김민혜입니다. (makereal@yna.co.kr)<br /><br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br /><br />(끝)<br /><b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