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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첫 발굴 서봉총, 이제서야 연구 결과 쏟아지는 이유는? / YTN

2020-09-12 11 Dailymotion

제사 항아리 속 생선·조개 유체 7천7백 점 발견 <br />1926년 경주역 확장 위해 흙을 파다 발견돼 <br />서봉총 금관 기생에게 씌우고 연회 벌여 파문<br /><br /> <br />1926년 일제강점기 때 처음 발굴된 경주 서봉총, 봉황 장식 금관이 나온 곳이죠. <br /> <br />서봉총에 대한 재발굴 작업을 통해 호화로운 제사 음식 등 천5백 년 전 신라의 생활상이 하나둘 공개되고 있습니다. <br /> <br />이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br /> <br />[기자] <br />천5백 년 전 신라 왕비와 아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경주 서봉총, <br /> <br />4년 전 무덤 둘레돌에서 큰 항아리 27점이 발견됐습니다. <br /> <br />네모 모양, 둥근 모양 제기가 옹기종기 담겼습니다. <br /> <br />항아리 안에서 발견된 물고기와 조개류 유체는 7천7백 점, <br /> <br />분석 결과 가을에 많이 잡히는 청어와 방어 등 온갖 종류의 생선이 확인됐습니다. <br /> <br />특히 돌고래와 복어, 성게 등 귀한 음식도 제사에 쓰였습니다. <br /> <br />민물 거북의 일종인 남생이 껍질도 나왔습니다. <br /> <br />[김대환 /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학예연구사 : 귀족들은 아주 좋은 식생활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그렇게 신선한 음식들을 바로바로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유통 체계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br /> <br />서봉총은 일제가 경주역을 확장하기 위해 흙을 파다 발견했습니다. <br /> <br />건설 물자 조달과 유물에 대한 욕심이 맞아떨어져 무덤을 덮는 흙은 모두 퍼 날라 졌고, 고고학의 기본인 보고서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br /> <br />금관을 발견한 일제는 고고학자인 스웨덴 황태자를 초청해 거두게 했습니다. <br /> <br />서봉총이라는 이름은 스웨덴의 한자 표기(瑞典)와 금관 장식인 봉황에서 한 글자씩 따와 지어진 것입니다. <br /> <br />발굴을 주도했던 고이즈미 아키오는 평양박물관장으로 부임한 뒤 서봉총 금관을 기생에게 씌우고 연회를 벌여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br /> <br />2016년과 2017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을 통해 서봉총은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br /> <br />무덤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방법이 밝혀졌고, 북분 직경도 일제가 파악한 것보다 10m 이상 컸습니다. <br /> <br />특히 신라 왕릉에서는 가장 오래된 상석이 발견돼 주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br /> <br />일제의 졸속 발굴로 밝혀지지 못한 고분의 실체와 신라의 생활상이 재발굴 조사 결과 확인되고 있습니다. <br /> <br />YTN 이승은[selee@ytn.co.kr]입니다.<br /><b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6_202009130645175377<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social@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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