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4월 ’사북항쟁’…광부와 주민 6천 명 농성 <br />노조 선거 무효·임금 인상 요구…경찰과 충돌 <br />계엄사 수사단 진압 과정서 물고문·폭행 자행 <br />부녀자 40~50명 연행…성적 유린·학대 발생<br /><br /> <br />오늘이 4월 21일이죠. <br /> <br />잘 모르는 분이 많겠지만 1980년 오늘, 강원도 정선 탄광 지역에서는 광부들을 중심으로 '사북항쟁'이 발생했습니다. <br /> <br />'사북항쟁'은 그동안 어용노조를 둘러싼 갈등과 농성 정도로 치부된 경향이 있었는데, 지역 인권단체가 조사해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br /> <br />지 환 기자가 보도합니다. <br /> <br />[기자] <br />광주 민주화 운동 한 달여 전인 1980년 4월 21일. <br /> <br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인 동원탄좌 사북영업소 광부와 가족 6천 명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br /> <br />노조지부장 부정선거 무효와 임금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br /> <br />사북 읍내를 점거한 이들은 경찰과 충돌해 경찰관 1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습니다. <br /> <br />그런데 당시 증언과 기록을 조사해보니 노사 문제가 주민 항쟁으로 번진 데는 다른 계기가 있었습니다. <br /> <br />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진 차량 사진. <br /> <br />이른바 정보형사로 불리던 당시 정선경찰서 소속 사복경찰관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br /> <br />노조원 동향을 감시하던 사복 경찰관 3명이 현장에서 도주하다 광부들에게 돌진해 2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br /> <br />[황인욱 / 정선지역사회연구소 : 노조 사무실에서 사복 경찰 3명이 동향 탐지하다가 광부들에 의해 지목을 받고 호통을 들으니까 도망가면서 지프 차로 노동자 서너 명을 깔아뭉갠 거죠.] <br /> <br />당시 신군부는 이 사실을 단순 교통사고로 발표했습니다. <br /> <br />그리고 공권력이 침해됐다며 계엄사령부 합동 수사단이 사북에 들이닥쳤습니다. <br /> <br />광부와 그 가족 150여 명은 정선경찰서 임시조사실에서 물고문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br /> <br />40~50명은 부녀자들이었고, 성적 유린과 학대, 희롱도 이어졌습니다. <br /> <br />[故 이명득 / 사북 항쟁 고문 피해자 : 곤봉대를 가지고 음부 쪽을 후려 때리고 이만큼 팬티가 내려가면 이놈도 만지고 저놈도 만지고.] <br /> <br />이웃 공동체가 파괴되며 당시 피해자 상당수는 탄광을 떠났고, 40년이 넘게 흐른 지금은 많은 사람이 숨졌습니다. <br /> <br />지난 2008년 진실 화해 위원회는 사북 항쟁에 대한 국가 사과를 권고했지만, 정부는 아직 아무 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br /> <br />YTN 지환[haji@ytn.co.kr]입니다. <br /> <br /> <br /> <br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YTN은 여러분의 ... (중략)<br /><b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15_202104210537272210<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social@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