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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아파트 둘러싼 희대 사기극, 시작은 "아들 여섯 전사" [e즐펀한 토크]

2022-06-24 1 Dailymotion

 ━<br />  군인 유족 기장 여섯개 단 김병조  <br />  1959년 6월 6일 서울 동작동 국군묘지. 분향소 앞에 선 유족은 연신 눈물을 훔치거나 입을 틀어막은 채 흐느꼈다. 6·25 전쟁(1950~1953) 때 전사한 군인 유족을 초청한 ‘제4회 현충일’ 기념식 모습이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그런 유족의 손을 꼭 잡으며 위로했다. 서울기록원과 e영상역사관이 보유한 당시 흑백사진에 담긴 모습이다. <br />   <br /> 당시 이 대통령의 눈에 띈 유족이 있었다. 왼쪽 가슴에 6개의 군인 유족 기장을(紀章)을 단 김병조(55)씨였다. 6개 기장은 여섯 아들의 죽음을 의미했다. 김씨는 이 대통령에게 “6·25 때 육 형제를 고스란히 조국에 바쳤다”며 “제주도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부는 김씨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하고 전사자 연금을 지급했다. <br />   <br /> 1961년 박정희 제2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김씨를 더욱 우대한다. 박 의장은 김씨에게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옛 풍전(豊田)빌딩(현 충정아파트)의 관리·운영권을 통째로 넘겨줬다. 당시 건물의 가치는 5000만 원으로, 현재 수십억 원으로 추산된다. <br />   <br /> <br /> ━<br />  반공의 아버지로 언론에 소개   <br />  정부가 김씨에게 무상 불하를 하기 전까지 풍전빌딩은 ‘트레머(Traymore)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미군(軍)이 갖고 있었다. 당시 미 군당국 핵심 관계자 역시 김씨의 기구한 사연에 감동해 한국 정부에 풍전빌딩을 넘겨줬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한 가정에서 4명 넘게 전사자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언론에...<br /><br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81904?cloc=dailymoti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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