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외교문서 공개…긴박했던 첫 북 핵시설 사찰<br /><br />[앵커]<br /><br />외교부는 매년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br /><br />올해는 36만여 쪽에 달하는 문서가 공개됐는데요.<br /><br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북한 핵사찰 전후로 벌어진 북한의 선전전 등 긴박했던 순간들이 담겼습니다.<br /><br />신현정 기자가 정리했습니다.<br /><br />[기자]<br /><br />1992년은 베일에 싸여있던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첫 사찰이 이뤄진 해입니다.<br /><br />그동안 기밀에 부쳐져 왔던 외교문서 2,361권에는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방북이 이뤄지기 전후 사정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br /><br />냉전이 종식된 뒤, 김일성 북한 주석은 핵 문제를 종결시키겠다며 북미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냅니다.<br /><br />그러면서도 북한 주민들에게는 방북한 적이 없는 IAEA 전문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이 "사회주의의 우월성에 감명했다"는 여론전을 펼칩니다.<br /><br />북한은 1992년 5월 총 16개의 핵시설 목록을 보고합니다.<br /><br />북한이 최초로 국제사회에 내놓은 핵 관련 보고서였습니다.<br /><br />이 중에는 우리 정부가 파악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설 3개를 비롯해, 핵연료 재처리 시설로 추정되는 시설이 포함됐습니다.<br /><br />이후 한스 블릭스 당시 IAEA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해 보고서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고, 방사능 화학실험실을 핵연료 재처리 시설로 결론짓습니다.<br /><br />북한 원자력 에너지부 국장도 플루토늄을 추출한 사실을 인정했다는 문건도 남아 있습니다.<br /><br />하지만 핵사찰은 북미 관계 개선이라는 본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흘러갑니다.<br /><br />IAEA가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시설들에 대한 특별 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은 남측의 야외기동훈련 '팀스피리트' 훈련을 구실로 이를 거부합니다.<br /><br />이듬해에는 NPT 탈퇴를 선언하며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고, 제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습니다.<br /><br />북한이 우리 군의 훈련을 빌미로 핵 위협을 고조시키는 등 몽니를 부리는 모습은 30년이 지나도록 반복되는 모양새입니다.<br /><br />연합뉴스TV 신현정입니다. (hyunspirit@yna.co.kr)<br /><br />#IAEA #핵사찰 #북한<br /><br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br /><br />(끝)<br /><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