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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납치 주도한 이후락에게 “해외 도피 안 하셔도 된다”-김대중 육성 회고록〈8〉

2023-07-03 5 Dailymotion

 ━<br />  김대중 육성 회고록 〈8〉 <br />  1972년 ‘10월 유신’이 날벼락처럼 떨어졌다. 신병 치료차 일본에 머물던 나, 김대중(DJ)은 망명 투쟁을 선택했다. <br />   <br /> 이듬해 7월 미국에서 유신 반대 운동의 구심체로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를 발족했다. “망명정부를 세우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단번에 물리쳤다. 8월 15일에는 한민통 일본 본부를 구축할 예정이었다. 박정희 정권에게 나는 불편한 망명객이었다. <br />   <br /> 긴장감이 고조되던 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사건’이 터졌다. 이날 오후 1시 도쿄 그랜드팰리스 호텔 22층 2212호실, 나는 일본을 방문한 양일동 의원과 식사를 마치고 방을 나서던 참이었다. <br />   <br /> 옆방 2210호실에서 괴한 네댓 명이 갑자기 뛰쳐나와 덮쳤다. 이어 2210호실로 끌고 간 뒤 마취 손수건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자동차에 실려 오사카의 한 가옥(한국 중앙정보부의 안가)에 끌려갔다. 납치범들은 나에게 허름한 옷과 신발로 갈아 입혔다. 다시 자동차에 태워 바닷가로 이동한 뒤 큰 배(중정 공작선 ‘용금호’)에서 나를 넘겼다. <br />   <br />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br />   <br />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판 밑에 감금당했다. 몸을 관(棺) 바닥에 까는 칠성판 같은 판자에 송장처럼 묶었다. 입에는 재갈을 물렸고, 두 눈은 붕대로 가렸다. 손과 발에는 돌덩이처럼 무거운 물체를 매달았다. <br />   <br /> “솜이불을 덮어야 물속에서 안 떠오른다” “후까”(일본어로 ‘상어’라는 뜻)란 말을 괴한들은 쑥덕였다. “나를 바다에 던져 상어 밥으로 주려는 것”이라는 끔찍한 상상이 스쳤다. <br /> ...<br /><br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4620?cloc=dailymoti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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