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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결혼, 두 번의 처복…두 여인이 김대중을 만들었다"-김대중 육성 회고록〈9〉

2023-07-10 13 Dailymotion

 ━<br />  김대중 육성 회고록 〈9〉 <br />  내 삶에는 두 여인의 향기가 서려 있다. 내 운명의 연인(戀人)에 관해 이야기하련다. <br />   <br /> 1959년 8월 나의 첫 여인이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궁핍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내 차용애가 아들 둘(홍일·홍업)을 남긴 채 32세 나이로 요절(夭折)했다. 그녀를 본 첫날을 잊을 수 없다. <br />   <br /> 나는 목포공립상업학교(목상)를 졸업한 뒤 해방 직전인 44년 전남기선㈜이란 해운회사에 취직해 회계 서무를 맡았다. 그해 여름, 사무실 앞에 앉아 길거리를 내다보다 한 여성에게 눈길이 꽂혔다. 하얀 원피스 차림에 양산을 받쳐 든 젊은 여성이 눈부셨다. 하얀 피부에 머리는 단정히 빗어 넘겼다. 우중충한 항구도시 목포에서 그렇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성은 처음 봤다. <br />   <br /> 첫눈에 반한 첫 아내 차용애 <br />   <br /> 첫눈에 반했다. 스무 살의 청춘 김대중은 상사병이라도 걸린 듯 그녀의 자태를 머리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의 신상을 수소문했다. ‘차용애’라는 이름을 가진, 목상 동기동창의 누이동생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본에서 여학교를 다니다 일본 본토에 미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얼마 전 귀국했다고 한다. <br />   <br /> 친구의 여동생이라니, 인연이었다. 친구 핑계를 대고 그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자연스럽게 그녀와 말문을 트고, 극장도 같이 가면서 가까워졌다. 우리는 애틋한 감정을 고백하고,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됐다. <br />   <br /> 그런데 그녀의 부친이 우리 결혼에 반대했다. 내가 징집돼 일본의 전쟁터에 끌려가 죽어버리면 딸이 과부로 살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당시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은 젊은이들...<br /><br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6374?cloc=dailymoti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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