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 /> 김대중 육성 회고록 〈16〉 <br /> 1987년은 우리 현대사에 ‘87년 체제’를 새겨 넣은 격동의 시간이었다. <br /> <br /> 대통령 직선제를 갈구하는 시대적 물결은 새해 벽두에 터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월 14일)과 맞물려 정국을 긴박하게 몰아갔다. <br /> <br /> 당시 민주화는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의미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방법의 변경은 88서울올림픽 개최 이후인 89년에 논의하자”며 직선제를 외면했다. 나, 김대중(DJ)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전두환 정권이 수락한다면 사면·복권되더라도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대치했다. <br /> <br /> 이런 와중에 ‘이민우 구상’이 돌출했다.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언론 자유 보장,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 등 민주화 조치가 선행되면 전두환 정권이 선호하는 내각책임제를 수용할 수 있다고 불쑥 던졌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을 벌이던 나와 김영삼(YS)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의장의 뜻과 배치되는 행동이었다. <br /> <br /> “YS에게 신민당 총재 넘겨라” <br /> <br /> 그해 2월 서울 외교구락부에서 나와 YS는 이민우 총재를 만나 최후통첩을 했다. <br /> <br /> (김대중) “이 총재는 저와 김영삼 의장이 (정치 규제자로) 묶여 있는 동안 신민당을 대리로 맡은 것 아닙니까. 김 의장(YS)이 복권됐으니 주인(총재)을 찾아줘야 합니다. 김 의장에게 당권을 넘기십시오. 저와 김 의장은 라이벌이지만, 그래야 민주화 투쟁이 제대로 힘을 발휘합니다.” <br /> <br /> (이민우) “….” <br /> <br /> 이민우 총재는 버텼다. 3자 회...<br /><br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8132?cloc=dailymotio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