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 /> 김대중 육성 회고록 〈18〉 <br /> 1990년 1월 22일 오전 10시,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정의당 총재를 맡고 있던 노 대통령 옆에는 통일민주당 김영삼(YS) 총재와 신민주공화당 김종필(JP) 총재(이하 존칭 생략)가 섰다. <br /> <br /> “중도 민주 세력의 대단합으로 큰 국민 정당을 탄생시켜 정치적 안정 위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를 확립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br /> <br /> 나, 김대중(DJ)을 고립시키려는 그들만의 ‘3당 합당’이었다. 88년 13대 총선에서 내린 민심은 나의 평화민주당(평민당)을 제1 야당으로 한 여소야대였다. 이 구도를 인위적으로 개편해 여대야소로 뒤바꿔 놓은 야합이었다. <br /> <br /> 3당은 ‘시대적 요청’ ‘하나님의 뜻’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켰다. ‘보수대연합’으로 포장한 여당은 전체 의석 299석 중 221석을 독식한 거대 공룡이 됐다. <br /> <br /> 야권은 평민당과 3당 합당을 거부한 이기택·김광일·노무현 의원 등이 남은 ‘꼬마 민주당’으로 쪼그라들었다. <br /> <br /> 나는 “국민이 만들어준 여소야대를 국민과 상의 없이 여대야소로 만드는 파렴치한 국민 배신행위로 완전 무효”라고 비판했다. 대학가와 재야에서도 민심 배반을 규탄하는 성명·대자보·집회가 잇따랐다. <br /> <br /> 노태우 “이제 편히 사시라” 합당 제안 <br /> <br /> ...<br /><br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1641?cloc=dailymotio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