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오늘 새벽 향년 82세로 별세했습니다.<br /><br />가야금 연주자이자 창작 가야금 음악의 창시자, 현대 국악 영역을 넓혀온 우리 음악계의 별이 졌습니다.<br /><br />김정회 기자입니다.<br /><br />[기자]<br />고령에도 명인의 연주는 정갈하고 여운이 깊었습니다.<br /><br />그러나 이 공연을 끝으로 황병기 선생은 다시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br /><br />석 달 뒤 뇌졸중 수술을 받게 됐고 뒤이어 발병한 폐렴 합병증을 이기지 못한 겁니다.<br /><br />황병기 선생이 처음 가야금을 접한 건 피란 시절이던 1951년.<br /><br />15살 소년은 첫사랑처럼 가야금에 빠졌고 곧바로 재능을 드러내며 이름을 알려갔습니다.<br /><br />집안의 반대로 대학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는데 졸업 후부터 교수와 연주자로 본격적인 음악의 길을 걸었습니다.<br /><br />1990년에는 평양에서도 연주했습니다.<br /><br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황 명인의 업적은 창작 가야금 곡, 현대화된 국악을 시작하고 대중화에 힘썼다는 점입니다.<br /><br />[황병기 / 국악인 : 새로운 것이 계속 만들어져야지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고 옛날 것만 연주하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라 골동품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62년부터 가야금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br /><br />이 과정에서 '침향' '비단길' '미궁' 등 명곡들을 낳았고 국내외 음악계는 물론 타 장르 예술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br /><br />황 명인의 현대적 작품 세계가 잘 드러난 곡이 '미궁'이라면 1974년 만든 '침향무'는 음악 세계의 전환점이자 대중적 인기까지 안겨 준, 고인이 생전에 특별히 여긴 곡이었습니다.<br /><br />[황병기 / 국악인 : 전혀 새로운 곡을 써야겠다 생각해서 조선조의 전통을 떠나서 신라 시대 때 음악으로 돌아가 보자 해서 쓴 게 '침향무'입니다.]<br /><br />70년 가까이 매일 가야금을 타며 현대화된 우리 소리 알리기에 나섰던 황병기 명인.<br /><br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2월 2일입니다.<br /><br />YTN 김정회입니다.<br /><br />▶ 기사 원문 : http://www.ytn.co.kr/_ln/0106_201801312239207611<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8585@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