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벌어진 '용산 참사'는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원 등 6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친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태로 꼽힙니다. <br /> <br />당시 경찰 지휘부가 위험을 알고도 무리하게 진압을 강행했고, 참사 이후에는 자기변호와 여론 덮기에만 급급했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br /> <br />취재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조은지 기자! <br /> <br />당시 남일동 건물 옥상이 불타던 기억 아주 생생합니다. <br /> <br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해서 사태를 키웠다, 이게 조사 결과죠? <br /> <br />[기자] <br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참사를 한마디로 '농성자 조기진압을 목표로 하다가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원의 생명과 안전이 무시된 사건이다'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br /> <br />당시 재개발 건물 남일당 세입자들은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했습니다. <br /> <br />경찰은 망루 설치 당일 농성 3시간 만에 경찰 1600명, 경찰특공대원 99명을 동원했고 25시간 만에 진압작전을 지시했습니다. <br /> <br />기중기로 경찰특공대원을 실은 컨테이너를 끌어올려 옥상에 투입했는데요. <br /> <br />두 차례 옥상에 진입을 해서 모두 불이 났고 특히 2차 진입 때 망루가 컨테이너와 충돌해 무너져 내리면서 불이 났습니다. <br /> <br />그래서 철거민 5명 등 6명이 사망했습니다. <br /> <br />경찰 특공대원들은 두 번째 망루에 진입할 때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독한 냄새가 났다, 휘발성 유증기가 가득 차서 술에 취한 듯 몽롱했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br /> <br />당시 경찰 지휘부는 옥상 망루에 시너와 화염병 등 위험물이 다수 있는 걸 알았고 농성자들이 분신이나 투신, 자해를 할 수 있다고 우려를 했지만 망루의 구조를 분석하거나 진입 방법을 논의한 적이 없습니다. <br /> <br />또 에어매트는커녕 고가 사다리차나 화학소방차 등 최소한의 대비책도 없었습니다. <br /> <br />실제 당시 경찰특공대장 대대장은 '작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작전을 연기하자' 이렇게 보고했지만 당시 경찰청 지휘부는 '겁 먹고 못 올라가는 거냐? 밑에서 물포를 쏘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br /> <br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 당시 서울청장이자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이었죠. <br /> <br />사고 10시간쯤 전인 2009년 1월 19일 오후 7시 기능별 대책회의를 통해 진압작전의 시간과 개요 그리고 경찰특공대 투입 등을 최종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br /> <br />진압작전이 시작된 1월 20일 당... (중략)<br /><br />▶ 기사 원문 : http://www.ytn.co.kr/_ln/0103_201809051206251421<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8585@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