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당시 기생들도 조직적으로 참여해 조국 독립을 외쳤습니다. <br /> <br />기생은 천시받던 직업이었지만 만세운동을 이끄는 등 독립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br /> <br />오태인 기자입니다. <br /> <br />[기자] <br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던 3월 25일에 발행된 '매일신보'입니다. <br /> <br />신문 한쪽에 경남 진주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띕니다. <br /> <br />기사는 '기생들이 태극기를 흔들었고 여자들이 뒤따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br /> <br />3월 19일 진주 만세운동에 기생들이 앞장섰음을 증명하는 겁니다. <br /> <br />주도했던 6명은 일본 경찰에 잡혀 구금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br /> <br />[추경화 / 향토 사학자 : 기생들이 앞장서니까 뒤에 시민들 따르면서 만세를 부르고…. 그중에서 맨 앞장선 주동자들 6~7명이 일경에 체포돼 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 <br /> <br />이런 기생들의 조직적인 3·1 운동 활동은 수원과 안성, 해주와 통영 등 전국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br /> <br />통영에서는 기생이던 이소선과 정막래 독립지사가 만세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br /> <br />두 사람은 기생 조합을 만들었고, 금반지를 팔아 동료들에게 상복을 나눠주고 앞장서 만세를 외쳤습니다. <br /> <br />이런 사실이 당시 일본 법원 판결문에 자세히 기록됐습니다. <br /> <br />일제강점기 이전 기생은 대부분 관에 소속된 관기 출신으로 시와 글에 능한 교양인으로 대접받았습니다. <br /> <br />기생학교에서 악기 연주는 물론 다양한 학문을 배우는 등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br /> <br />사회지도층과 만나 의견을 나누면서 일본 침략 만행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br /> <br />[송성안 / 경남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일제의 식민지 침탈에 대해 누고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보니까…. 3·1 독립 만세 운동에 기생들이 조합을 만들어서 집단으로 조직화해서 만세운동을 표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br /> <br />하지만 국권침탈 이후 상업적으로 왜곡되면서 천시를 받았던 기생들. <br /> <br />직업의 높고 낮음을 떠나 기생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컸습니다. <br /> <br />YTN 오태인[otaein@ytn.co.kr]입니다. <br /><b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15_201903021047392902<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8585@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