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는 유신정권을 반대하는 민중들의 항쟁이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br /> <br />40년 만에 올해 '부마 민주항쟁'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br /> <br />오태인 기자입니다. <br /> <br />[기자] <br />1979년 10월 16일. <br /> <br />당시 부산대에서는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투쟁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br /> <br />자유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함성은 순식간에 부산 도심으로 퍼졌습니다. <br /> <br />이틀 뒤인 18일에는 마산까지 번지면서 수많은 민중이 함께했습니다. <br /> <br />유신 시대, 최초이자 최대의 시민항쟁이었습니다. <br /> <br />[박봉환 / 부마 민주항쟁 당시 경남대 학생 : 우리가 교문을 열어달라 당연히 요구했고 하지만 교문은 열리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교문을 타고 오르기도 했고 뭐 끌어내리기도 했고. 거기서부터 어쩌면 격렬함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죠.] <br /> <br />부마항쟁으로 집권층 사이에 해결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고, 이 갈등은 10·26사태로 이어졌습니다. <br /> <br />박정희 군사정권을 끝내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된 겁니다. <br /> <br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 항쟁이었지만, 그동안 역사적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br /> <br />3·15의거와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과 달리 국가기념일 제정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br /> <br />[최갑순 / 부마 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 : 역사적인 사실 자체가 거의 묻혀있었죠. 그 이유는 유신정권이 붕괴가 됐지만 군사정권은 전두환을 통해서 그대로 유지가 되었고 그 전두환을 통해서 광주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br /> <br />역사에 가려져 잊혔던 부마항쟁이 40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습니다. <br /> <br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면서 민주화에 이바지한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게 된 겁니다. <br /> <br />[송기인 신부 /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 우리는 하나씩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거든요. 늦었다는 것에 매몰돼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나가느냐 여기에 노력해야죠.] <br /> <br />부마항쟁이 재평가를 받으면서 진실도 밝혀지고 관련자들의 명예도 회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br /> <br />국가 기념일로 처음 열리는 올해 기념식은 마산항쟁이 시작되었던 경남대학교에서 오는 16일 개최됩니다. <br /> <br />YTN 오태인[otaein@ytn.co.kr]입니다.<br /><b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15_201910140031116704<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8585@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