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암흑기에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 회복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고인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뒤늦게나마 지난날의 과오를 사법부가 공적으로 사죄하는 이번 재심판결이 고인의 평안과 안식에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피고인의 범죄는 범죄가 되지 않아서 무죄를 선고합니다"<br /><br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옥고를 치른 고(故) 장준하 선생이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었다. 유죄를 선고 받은지 39년 만이다. <br /><br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유상재 부장판사)는 재심결정을 내린 뒤 열린 첫 공판에서 "재심 대상 판결에서 유죄의 근거가 된 긴급조치 1호는 2010년 12월 대법원에서 위헌·무효임이 확인됐다"며 "형사소송법 325조에 의해 장 선생에게도 무죄를 선고해야 마땅하다"며 별도로 선고 기일을 지정하지 않고 바로 무죄를 선고했다. <br /><br />재판부는 "사실 관계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적용법조의 위헌성을 확인하고 법적 판단만 하면 되는 재판"이라고 즉일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br /><br />선고에 앞서 재판부는 상당한 시간동안 장 선생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br /><br />재판부는 "국가가 범한 지난날의 과오에 공적으로 사죄를 구하는 매우 엄숙한 자리에서 국민의 한 사람이자 사법부의 일원으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진다"면서 "국민주권과 헌법정신이 유린당한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스스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에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밝혔다.<br /><br />이어 "장 선생에게 유죄를 선고한 뼈아픈 과거사를 바탕으로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사법부가 될 것을 다짐한다"며 "재심 청구 이후 3년이 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족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br /><br />선고에 앞서 변호인은 "이 법정은 폭압적인 야만의 시대가 끝났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br /><br />검찰도 "장 선생의 유죄선고의 근거가 된 긴급조치 1호가 2010년 대법원에서 위헌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됐다"며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구형했다. <br /><br />장준하 선생의 아들 호권(64)씨는 이날 법정에서 "재심을 열어주신 재판부와 무죄를 구형해준 검찰에 대단히 고맙다"고 밝혔다. <br /><br />무죄 선고 직후 호권씨는 "선친의 명예가 회복됐고, 가족들도 이제 그 멍에를 지지 않고 떳떳하게 생활하게 된 것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며 "(오늘 선고는)우리 국민이 대통합의 미래로 나가는 시발점이 될 역사적인 재판이라 생각한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br /><br />변호인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고 무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br /><br />장 선생은 1974년 유신헌법 개정을 주장하며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br /><br />당시 공소제기부터 확정판결까지 6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절차가 진행됐고, 장 선생은 병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7개월동안 옥고를 치렀다.<br /><br />이후 장 선생은 이듬해인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망 원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암살' 논란이 일었다. 최근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가 구성돼 개묘 작업이 진행되는 등 의문사 의혹 규명 작업이 진행중이다. <br /><br />CBS 김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