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년 전 10월에 일본인들이 난입해 우리 왕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났습니다. <br /> <br />당시 현장을 목격한 러시아인이 있었습니다. <br /> <br />외국인이 어떻게 새벽에 구중궁궐에 있을 수 있었던 걸까요? <br /> <br />이승은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br /> <br />[기자] <br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군과 공사 관원, 낭인이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현장입니다. <br /> <br />러시아인 세레딘 사바틴은 당시 이곳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했습니다. <br /> <br />이후 약도와 자세한 기록을 러시아 정부에 전했습니다. <br /> <br />곤녕합에서 여성들이 내던져지는 장면, 자신이 빠져나온 경위, 조선인들도 만행에 협력한 부끄러운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br /> <br />사바틴이 사건 당일 경복궁에 있었던 것은 일본 군대가 경복궁을 점령하자 불안한 고종이 미국인 두 명과 사바틴에게 번갈아가며 야간 당직을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br /> <br />[이정수 /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학예연구사 : 을미사변 직후 일본 측은 관여설을 부정했습니다. 그런데 사바틴의 증언서 덕분에 관여설이 사실임이 증명됐습니다.] <br /> <br />■ 展, 덕수궁 중명전, 11월 11일까지 <br /> <br />사바틴에 대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br /> <br />사바틴은 경복궁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관문각과 러시아 공사관을 지은 건축가입니다. <br /> <br />공사관은 을미사변 다음 해 고종이 피신한 곳이기도 합니다. <br /> <br />[안드레이 쿨릭 / 주한 러시아 대사 : 러-한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열린 전시회이지만 전시회를 통해서 우리의 우호 관계 역사는 30년이 아니라 150년 역사에 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br /> <br />사바틴은 인천과 서울 정동 일대 건축물 조성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br /> <br />아치형 복도에 다문화적인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br /> <br />독립문과 덕수궁 정관헌, 중명전, 사바틴이 건설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 도심 현존 건축물입니다. <br /> <br />YTN 이승은[selee@ytn.co.kr]입니다.<br /><b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6_202010250228144674<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social@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