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첫 남북 합의인 7·4 남북공동성명과 관련한 남북회담 자료가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br /> <br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남북 간 비밀접촉 과정도 담겼는데 무엇보다 당시 북측이 우리에게 집요하게 정상회담을 요구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br /> <br />최두희 기자입니다. <br /> <br />[기자] <br />1972년 7월 4일. <br /> <br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당국이 공동성명을 타결한 역사적인 순간. <br /> <br />[대한뉴스 (1972년 7월 8일) :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7개 항의 공동성명이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됐습니다.] <br /> <br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반도를 들썩이게 했던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하기까지의 비밀접촉 등이 담긴 회담 사료가 공개됐습니다. <br /> <br />당시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김일성 주석의 동생이자 북한 정권의 2인자였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만났는데, <br /> <br />북측은 우리를 향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집요하게 요구했습니다. <br /> <br />김일성 주석과 박정희 대통령 간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이후락 부장은 회담이 잘못될 경우 실망이 클 것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br /> <br />이렇게 북측이 당시 적극적으로 정상회담을 요구한 배경엔 주한미군 철수라는 나름의 속셈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br /> <br />[박원곤 /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북한이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게 되면 거기에 따라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그런 측면에서 정상회담이라는 가장 높은 수준의 관계를 모색한 것을 제안했다고….] <br /> <br />비밀접촉을 위해 서로가 당시 '적국'으로 오간 만큼 남북한은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각서를 써 주기도 했습니다. <br /> <br />다만 관심을 모았던 이후락 부장과 김일성 주석의 면담 내용 등은 이번에 공개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br /> <br />힘겨운 과정을 거쳐 7·4 공동성명이 나온 순간은 화려했지만, 합의사항을 추진하기 위해 가동됐던 남북 간 공식 대화 기구인 남북조절위원회는 이후 부침을 겪다가 파행됐습니다. <br /> <br />이후 남북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간 끝에 북한의 핵 개발 고도화로 극도로 경색된 상황입니다. <br /> <br />YTN 최두희입니다. <br /> <br /> <br /><br /><br />YTN 최두희 (dh0226@ytn.co.kr)<br /><br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br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br />[전화] 02-398-8585 <br />[메일] social@ytn.co.kr<br /><b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1_202307061707563461<br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social@ytn.co.kr, #2424<br /><br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br /><br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